지난 겨울은 유독 추웠다. 얼마나 추웠는지, 한동안 밖에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 베란다 창문도 꽁꽁 얼어있어 한동안 로스팅도 못했었다. 따뜻한 이불속에 들어가 있으면 만사 귀찮아지는, 혹독한 추위였다. 직접 콩을 볶지도, 너무 추워 사러 나가지도 못하는 괴로운 날의 연속이었다. 참고 참던 어느 날, 나는 두꺼운 파카를 입고 목도리로 온 얼굴을 둘러싸고 커피를 사러 나섰다. 무릎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추위를 뚫고 1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응암동의 커피생각이었다. 시다모를 구입했고, 한동안 그 커피로 연명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막입이라 어떤 것도 대부분 감사히 먹는 편이다. 하지만 까다로운 척을 하는건지, 까다로운건지 원두를 사먹을 때는 나름 엄격하게 구입을 한다. 이런 나에게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 카페에서 맛있는 원두를 사먹을 수 있다는 건 더할나위 없는 축복이다.
오늘 소개할 카페는 응암동, 불광천변에 위치하고 있는 로스터리 카페 '커피생각'이다. 커피생각의 특징이라면, 주택가 사이에 있는 '동네 카페'라는 점이다. 하지만 '동네 카페'라고 하기엔 수준급의 드립커피를 판매한다.  

커피 탐방을 할때, 카페 주인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아이폰을 사용한다. 그래서 가끔씩은 이런 일이 발생. 멋지게 카페 전경을 찍으려다 이렇게 됐다. 아무튼, 커피생각은 정말 동네에 있는 카페다. 6호선이 순환하는, 응암역과 새절역 사이 그리고 주택가와 불광천 사이에.

커피생각은 융드립 전문점이다. 커피를 사랑하는 젊은 부부가 인테리어부터 로스팅까지 세세하게 신경써가며 커피를 내려준다. 카페에 찾아가면 훈훈한 두 남녀가 커피를 내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눈이 크고 땡글땡글한, 잘생긴 분이 로스팅을 담당하시는 남자 사장님. 역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한눈에도 미인이라고 생각되는 분이 커피를 내려주시는 여자 사장님이다. 물론 두분의 역할이 바뀔 때도 있다. 두 분중 한분만 계실 때도 있고.

메뉴판. 인테리어도 직접 하다 못해, 메뉴판도 직접 만드셨다. 커피의 맛에 대해 정성스레 표현하신 부분은 이 메뉴판의 하이라이트다. 도무지 어떤 커피가 어떤 커핀지 모르겠다고 느끼는 분들은 이 설명을 참고하면 커피를 고르는 데 도움이 될 것같다. 여기에 카페에서 직접 만드는 다양한 베이커리 메뉴는 불렀던 배도 다시 고프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동네에 있는 카페라 지역주민의 다양한 취향을 커버해야 하기 때문에 메뉴가 좀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 부분은 이해가 가면서도 좀 아쉬운 부분이다. 커피를 못마시는 손님까지도 배려해야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앞서 소개했던 카페들과는 달리 '커피'에만 집중하는 느낌이 부족해서 조금 아쉽다.


 

드립용 그라인더는 후지로얄, 에스프레소 머신은 페마. 에스프레소용 말코닉 그라인더가 구석에서 찬란한 빛을 뽐내고 있다.

로스터기는 태환 프로스타. 일전에 소개한 상수동 커피발전소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로스터기다. 태환 로스터기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하지만 정말 정성들여 잘 볶는 집은 태환으로 볶아도 맛있다. 커피생각은 엄선된 생두와 지속적인 연구로 매번 진화하는 커피맛을 보여준다.

국내 커피 기구가 일본이나 미국의 머신보다 부족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영도 그라인더 포스팅에서도 얘기했듯,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 프로스타에 대해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프로스타를 사용하는 카페 중에서도 평균 이상의 맛을 내는 곳은 많다. 어떤 로스터기든 생두 선택에 얼마나 신경을 쓰느냐, 얼마나 섬세하게 로스팅을 하느냐에 따라 맛은 천차 만별이다. 훌륭한 로스터가 좋은 커피를 만드는 거지 로스터기만 좋다고 맛있는 커피가 나오는건 아니다.

잠시 카페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는 불광천이 흐르고 있다. 카페 밖에도 테이블이 있어서, 날씨가 좋을때는 밖에서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밖에 있는 의자 중에는 보일러가 장착된 긴 의자가 하나 있는데, 겨울에 여기에 앉아 담요를 덮고 있으면 어떠한 추위도 견딜 수 있다(사람에 따라서 편차가 있긴 하지만;). 

 

오랜만에 커피생각을 찾아서 너무 흥분을 했었다. 그래서 커피 마시기 전에 사진 찍는걸 깜빡. 마시던 중에 사진을 찍었다. 브라질과 케냐가 적절하게 배합된 블렌드와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이곳의 드립커피는 '화려하다'. 언젠가 같이 간 여자친구가 그렇게 표현을 했었다. 맞는 말이었다. 드립커피가 어떻게 화려할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커피생각에서 커피를 마셔보라고 말하고 싶다. 에스프레소도 역시 평균 이상이다. 홍대 카페거리에 가져가도 무색할만큼(사실 홍대 카페거리라고 커피가 다 맛있는 건 아니다) 깔끔하다. 아쉬운 게 있다면 드립에서나, 에스프레소에서나 '커피생각'을 대표하는 블렌드가 없다는 것. 

커피생각이 가진 강점은 '맛있는 커피'를 내려준다는 부분이다. 사실,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는 많지 않다. 특히 대부분의 소규모 지역 카페는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커피가 원래 쓴 줄 알고 시럽만 잔뜩 넣어서 먹는다. 하지만 커피생각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맛있는 커피를 경험한다. 응암동에 등장한 커피생각은 커피맛의 '상향 평준화'에 기여하고 있다. 커피생각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주변에는 비슷한 로스터리 카페가 생기기 시작했다. 응암동에 프렌차이즈 카페의 확장이 줄어들고, 커피맛의 상향평준화가 이뤄진다면 이건 분명 '커피생각'의 공일 것이다.
 

더불어 베이커리의 상향평준화도. 이곳의 토스트와 각종 쿠키는 놀랍게도 너무나 맛있다.

 

커피생각에서는 더치커피도 판매한다. 카페 곳곳에는 사장님들(?)이 손수 수집한 커피잔과 커피용품들이 진열돼있다.

 

한 번은 바에 앉에 사장님이 커피 내리는 걸 살펴본 적이 있다. 사장님은 단골 손님의 취향을 적절히 파악해서는 그에 맞게 커피를 내리셨다.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지, 연한 커피를 좋아하는지 혹은 어떤 맛과 향의 커피를 좋아하는지 세세하게 기억하고 계신다. 조용히 카페에 손님들이 오고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깔끔한 내부 전경. 내부에는 작은 테이블도 있고. 매장은 언제나 깔끔하다.

깔끔한 건 화장실도 마찬가지. 믿거나 말거나. 궁금하면 한 번 가보시길 바란다.

  • 커피생각 포인트 - 화려한 드립커피를 맛보고 싶다면 커피한잔을 찾으시길. 손님을 맞아주는 사장님의 밝은 미소는 커피를 더욱 맛있게 해준다. 다양한 베이커리도 이곳만의 장점. 빈 속에 카페를 찾아도 언제나 든든하다.
  • 커피생각 미스 포인트 - 가끔씩 많이 시끄러울 때가 있다. 컨셉이 없이 흐르는 무난한 음악도 단점이라면 단점. 메뉴가 너무 많고, 각 메뉴간의 편차가 조금 있다. 커피메뉴가 제일 맛있으니 왠만하면 커피를 마시길 추천한다. 
  • 커피생각 포 미 - 영하 15도 날씨에 자전거를 몰고 찾아갔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 커피생각 가는 길 - 지하철을 이용하는게 제일 편하다. 새절역 1번 출구로 나와 직진. 다리가 우회전. 다리를 건너서 다시 우회전. 조금만 걷다보면 커피 향이 풍겨올 것이다. 그곳이 커피생각. 새절역과 응암오거리를 경유하는 버스(571, 753, 7017, 7018, 7021, 7730)을 타도 좋다. 새절역을 찾아서 1번출구를 기준으로 카페를 찾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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