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님, CD를 트시네요. 클래식 좋아하시나 봐요.” 아니나 다를까, 회심의 미소가 느껴진다. “네, 유일한 낙이죠.” “글렌 굴드 좋아하세요?” “바흐는 역시 글렌 굴드 연주로 들어야 진가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중략)…그러나 이 기사님은 역시 달랐다. 괜히 인자하고 자애로우며 격조까지 갖춘 인상의 소유자가 아닌 것이다. “그러세요? 그러면 베토벤을 들어볼까요? 어떤 작품 좋아하시는데요?” 그는 의자 밑에서 가방을 하나 꺼내들어 열었다. 세상에, CD로 가득 차 있는 가방이었다. “7번 교향곡 좋아합니다.” (순전히 <노다메 칸타빌레> 때문이다.) “아, 그러시구나.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도 있긴 한데….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BBC 레코딩으로 들어볼까요?” 그는 같은 애호가만이 느낄 수 있는 숙달된 손놀림으로 탁탁탁탁, CD 가방을 넘기더니 한 장의 CD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플레이어에 걸었다. 그것 자체로 감동이었다. 클래식을 듣는 택시 기사라는 사실도 충분히 감동인데 리퀘스트 시스템까지 도입하고, 게다가 신청자의 ‘니즈’와 현실을 조화시킨 선곡까지 갖추고 있는 것이다.
…(중략)…그러나 감동에 젖어 몇 악절을 듣기도 전에 택시는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계산을 하려는 찰나, 그는 백미러를 보며 말했다. “베토벤은 역시 강변북로를 달리며 들어야 맛인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 소중한 기회를 하찮은 약속 때문에 놓쳐서야 어찌 호연지기를 가진 사나이라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런 경험은 능히 칼럼으로 써먹을 수 있지 않은가. “달리시죠.” 우리는 그렇게 1악장과 2악장을 들으며 심야의 드라이브를 즐겼다. …(후략)…

-출처 : 한겨레21, 김작가의 음담악담, 어느 택시 기사의 품위
http://h21.hani.co.kr/section-021153000/2007/11/021153000200711220686048.html


베토벤을 들으며 강변북로를 달렸던 이 일화가 생각났던건, 밀로커피 덕분이었다. 사람이 많아서 조금 시끄러웠지만, 잔잔하게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음, 음악에 무척이나 신경쓰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렇게 흘려보내기엔 아쉬워 제목이라도 알아보려고 사장님께 말을 걸었다. '사장님, 여기는 언제 조용하죠? 조용할 때 와서 음악 듣고싶네요.' 사장님은 반가운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대중이 없어요. 그래도 낮에오면 조금 여유로우니 그때 오시면 되겠네요.'. 나는 대답했다. '음악이 참 좋네요. 신경 써서 트시는 것 같아요.' 사장님은 웃으면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얽힌 사연을 얘기해주셨다. 어느 날, 차를 타고 집에가는데 라디오에서 이 음악을 만났다고 하셨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히터소리가 너무 커서 음악을 듣기위해 잠시 꺼두었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멈추지 않은 음악 덕분에 벌벌떨면서도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고. 얼마 후, 사람들이 자리를 비우자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장님께 부탁해 선곡도 요청했고. 이 음악, 저 음악.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음악을 들었다.  

오늘 소개할 카페는 홍대에 있는 로스터리 샵, 밀로커피 로스터스다.

 

밀로 커피를 찾은건, 일요일 저녁.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겉으로 훤히 보이는 로스팅실 덕분에, 이곳에 찾아야겠다고 수백번 다짐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트위터에 올라온 곰사장님의 한마디에 나는 밀로커피를 찾았다.

'밀로커피 맛있다'

범상치 않은 메뉴판. 메뉴가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직접 로스팅 한다는 자부심도 느껴지고, 밀로커피만의 이미지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서 인상깊었다. 가격은 보통.

 

메뉴판이 재미있어서 한참을 봤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메뉴판에 있는 메뉴는 밀로커피가 원래 홍대 수노래방 근처에 있을 때부터 있던 것들이라고 한다. 10년이상 된 메뉴라는 얘기다. 내가 주문한 건 커피 뿐이지만, 주변 사람들이 시킨 것들을 보면 상당한 정성이 들어간 것 처럼 보였다. 레몬에드엔 레몬 하나가 통으로 들어갔고, 녹차아이스크림엔 진짜 녹차가 들어갔다. 바에서 정성스레 제조하던 사장님의 모습을 보면서, 모 프렌차이즈 커피숍에서 파는 수박가격만한 수박음료에도 수박이 저만큼 들어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럽만 넣어 대충 맛을 내는 곳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라보였다.

 

주문한 카푸치노. 마일드하면서도 은은하게 단맛이 느껴졌다. 뚜렷한 개성이 느껴지진 않았지만(사실, 감기기운이 때문에 코가 맹맹해 맛과 향을 충분히 못느꼈을을수도 있다) 흠잡을 게 없는 맛이었다. 적절히 우유와 조화된 신맛, 과일 맛, 혀끝을 즐겁게 하는 상큼함까지. 흡사 백조가 떠올랐다. 우아하게 수면위에 떠있기 위해 엄청난 발길질을 하는 느낌이었다. 이 한잔을 위해 블렌딩을 고민하고, 적절한 추출을 하기까지 부단한 노력이 느껴지는 맛이었다(식상한 비유지만 말이다-하지만 스팅의 연주도 백조에 비유되기도 하지). 

한 문장으로 줄이자면, 밀로(millo, 히브리어로 가득 찬 이란 의미)같은 카푸치노 한 잔이었다.

언제나 강조하지만 최고의 기구만이 최고의 커피맛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구에 그만큼 신경을 쓴다는건, 그만큼 바리스탁 커피맛에 신경을 쓴다는 증거이다. 밀로커피에는 대형 프로밧 로스터기와 후지로얄 로스터 그리고 라마르조꼬 머신과 말코닉 그라인더가 보란듯이 자리잡고 있었다.

밀로커피는 다양한 커피 용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분명 사장님께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주실테니 고민말고 문의해보시길). 주변을 둘러보며 나는 리필을 시켰고, 곧 맛있는 아메리카노가 서빙됐다. 카푸치노보다는 좀 더 산뜻한 맛. 혀 끝에 남는 텁텁함은 좀 아쉬웠지만, 개성있고 맛있었다. 역시나 감기기운이 도는게 아쉬웠다. 덕분에 좀 더 깊은 맛을 느끼지 못했다.

에어로프레스부터, 고급 사이폰, 케멕스 각종 드립용품이 벽장에 놓여있다. 두번째 도넛 드리퍼는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 희귀 아이템이라고. 다양한 커피 기구를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다는 것도 밀로커피의 장점.

 

밀로커피 사장님은 직원이 두명일 땐, 한 곡단위로 시디를 바꿔가면서 음악을 틀었다고 한다. 지금은 혼자 카페를 운영하셔서 그럴 겨를은 없다고. 하지만 분명 아무렇게나 음악을 트는 건 아니었다. 시디 플레이어 밑으로는 많은 시디들이 놓여있었다. 사장님은 커피 뿐만이 아니라 음악에도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계셨다. 좋은 음악을 감상하고 싶다면 밀로커피를 찾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밖으로 나와 로스팅실도 구경했다. 프로밧과 후지로얄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카페에 걸려있는 그림도 인상깊었다. 캐나다 작가인 Will Rafuse의 그림을 비롯해 메뉴판의 아기자기한 일러스트 그리고 사장님의 따님이 직접 만든 작품까지. 그림마저 세세하게 신경써서 걸어놓은 느낌이었다.

카페는 전반적으로 깔끔했다. 바와 주방도 모두 청결했고. 청결함을 유지하는건, 좋은 카페의 기본 요건이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주방은 더러운 카페가 있는 반면, 밀로커피는 겉과 속이 모두 깨끗한 카페였다. 좋은 커피, 좋은 서비스를 위해 밀로커피가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장님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내가 밀로커피 사장님을 본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처음에 내가 사장님을 만난 곳은 곰다방이었다. 혼자 커피를 후룩후룩 마시고 있는데 멀리서 유명인 포스가 풍겨오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 나는 만화가 허영만인줄 알았다. 알고보니 그 분은 밀로커피 사장님이셨다. 아무튼, 그날 나는 새로 산 통돌이를 처음 가동해 볶은 콩을 곰다방에 가져갔다. 조언을 듣기 위해서였다. 맛없다는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어쨋든 문제점을 찾아내고 고쳐야 했기에 커피를 내렸다. 그 순간, 밀로커피 사장님은 나에게 자기것도 한 잔 내려달라고 하셨다. 나는 완강히 거부했다. 더럽게 맛없을 뿐더러, 아직 나도 뭐가 문젠지도 모르는 콩을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내려준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몇번 요청을 하셔서 결국 내려드리고야 말았다. 커피를 갓 내렸을 때, 그 향이 마실때 향과 같으면 좋은 커피라고 하시면서 내가 내린 커피를 드셨다. 그 때, 나는 느꼈다. 이 분은 정말 커피를 좋아하는구나라고. 맛없는 커피를 내려드려 민망했지만, 한편으론 좋은 인연을 만난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실제로 그분의 카페에 가보니 그랬다. 사장님은 커피를 엄청 좋아하셨다. 그리고 사람들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셨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밀로커피에 자주 찾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밀로커피 포인트 - '밀로'같이 가득찬 커피 맛. 카푸치노와 아메리카노 모두 맛있다. 섬세한 선곡도 이곳의 장점. 좋은 커피와 좋은 음악이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먹어보진 않았지만 나머지 메뉴들도 훌륭해보였다.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멀리서 유심히 지켜봤기 때문에 안다. 충분+충분.
  • 밀로커피 미스 포인트 - 사장님께선 마지막에 스트롱 블렌드(드립커피를 안하는대신 미리 진하게 내린 아이스커피를 판다)를 내려주시면서 이게 단점이라고 말하라고 하셨지만, 역시나 맛있었다. 주말 저녁이라 조금 시끄럽다는 부분(원래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면, 사람이 많아도 조용하다)이나 맞은편 공원의 노숙자들이 밤에는 조금 무서울수 있다는 부분이 단점정도 되겠다.
  • 밀로커피 포 미 - 음악이 좋고 커피가 맛있으면 금상첨화 아닌가. 단골 예약이다.
  • 밀로커피 가는 길 - 홍대역 8번출구로 나온후 직진. 훼밀리마트가 보이면 우회전. 직진후 공원이 보이면 밀로커피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버스 이용시 역시 홍대입구역에 내리면 된다. 홍대 주변에서 놀다가 찾을 경우, 산울림 소극장을 지나 꽃집을 끼고 내려오면 된다. 교차로가 나와도 아래로 직진, 공원이 나오면 우회전을 한다. 공항철도 근처로 가다보면 역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주소는 마포구 동교동 170-32. 1층에 유리창 너머로 로스터기가 보이고 맛있는 커피향이 풍기면 그곳이 밀로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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