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1. 자우림은 '나는 가수다'의 첫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출연하게 된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음악은 스포츠와는 다른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순위 매기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이유가 있습니다." 조용히 있었던 베이시스트(였던 걸로 기억한다)가 인상깊은 말을 던졌다. "이 프로를 통해 사람들이 가사를 듣게 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출연하기로 결심했죠."

2. 작년 겨울이었을 것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박완규는 자신이 후배들과 노래방에 가서 생긴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한 번은 후배 가수들과 노래방에 가서 대판 싸웠던 적이 있었어요. 그녀석들이 간주점프를 하는거에요. 간주점프를. 아니, 제대로된 뮤지션이라면 한 곡의 음악이 가진 의미를 모르는 게 아닐텐데 간주점프를 하다니. 화가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음악을 작곡하는 사람은 음표 하나 하나를 세심하게 작곡합니다. 간주에는 그러한 고뇌가 깊이 담겨있어요. 그걸 무시하는 행위를 용서할 수 없었어요."

3. 뉴욕에선 지난 노래들을 틀어주는 곳이 많았다. 비틀즈와 롤링스톤즈, 엘튼 존과 마이클 잭슨은 내가 미국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마주쳤던 뮤지션이다. 특히 비틀즈는 뉴욕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옷가게에서도, 초콜렛 공장에서도, 카페에서도, 레스토랑에서도. 심지어는 마트에서도 비틀즈가 그려진 잔을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뉴요커들이 오래된, 고전이 된 음악을 여전히 즐겨들을 줄 아는 멋쟁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친구가 나에게 '우리나라에는 헤이쥬드처럼 모든 국민이 따라부를만한 노래가 있나 싶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심수봉의 음악을 다시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건, 한 편의 동영상 때문이었다. 전날 비오는 곰다방에서 심수봉의 음악을 틀어놓고, 가슴이 쿵쿵 거렸던 생각이 나서 찾아봤었다.



1978년 대학가요제, 드럼을 잘 친다는 심민경양이었다. 범상치 않은 전주며, 목소리 그리고 재즈의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간드러지는 피아노 솔로까지. 아, 이거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수봉의 음악은 가사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음악이다. 그녀의 음악을 통해 우리는 심수봉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노래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알 수 있다. 노래의 가사를 듣는다는건 단순히 듣는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가사가 채 이야기 하지 못하는, 노래에 담긴 사연을 가슴깊이 공감한다는 이야기이다.
도대체 어떤 가사인지 부르는 사람조차도 모르는 그런 가사만이 가득한 최근의 가요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멜로디와 스토리가 없는 가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사를 듣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나는 가수다에서 자우림이 말했던 것 처럼, 사람들은 다시 가사를 듣기 시작했다. 나도, 심수봉을 통해 가사를 듣기 시작했다. 그녀의 음악에는 가사를 듣게 하는 힘이 있다. 음악 자체에 담겨있는 그 많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듣게 만든다.

심수봉의 피아노 솔로는 한 곡의 재즈를 연상케 했다. 앞서 들려준 이야기(주제)에 대한 자유롭고 멋드러진 재 해석이 자연스럽게 간주속에 녹아들어있다. 마치 고전적인 재즈가 보여주는 형식-주제가 되는 멜로디를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을 연주하고 다시 마지막에는 주제가 되는 멜로디로 곡을 마무리하는 방식-처럼 말이다.간주를 다시 듣기 위해 동영상을 몇번이나 반복 재생했는지 모르겠다. 음표 하나하나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는 음악이다. 말그대로 디테일이 살아있는 음악이었다. 어떤 악기, 어떤 음표도 놓칠수 없는 매력적인 음악이었다. 박완규가 그토록 화냈던 이유를(이전에도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었지만) 다시 이해할 수 있었다.

트로트라는 장르를 구분짓는 용어 덕분에, 심수봉의 음악이 조금은 저평가 됐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심수봉이 훌륭한 뮤지션이라는데 다들 동의는 하지만, 그녀의 노래와 세대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녀의 노래가 트로트라는 이름하에 잘 찾지 않는 음악이 됐다는 것이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그저 70-80년대 분위기를 향수하는데 쓰이는 배경음악이 됐고, '사랑밖에 난 몰라'는 색소폰 전주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이 지긋이 드신 분들이 찾아가는 캬바레를 상징하는 음악처럼 여겨지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신기한건, 우리는 대부분 심수봉 노래의 가사를 (한 소절이라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많이 들었거나 혹은 익숙한 음악이라거나. 미국에서, 비틀즈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흥얼거리는 음악이라면 우리에게는 심수봉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로트라는 장르가 가진 수 많은 편견 때문에, 심수봉의 음악은 세대를 넘나들기에는 조금 벅찬감이 있다.
한 트로트 가수가 공중파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트로트라고 부르기보다 고전가요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지난 음악이라고 모두 트로트라는 장르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그 많은 음악을 모두 트로트라 하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맞는 말이다. 고전가요라고 칭하기엔 머쓱한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모든 7080 대중가요가 트로트라는 장르로 분류되는 건 분명 지적할만한 일이다. 아니, 어떤 음악을 장르로 분류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장르구분을 떠나서 어떤 뮤지션이 음악인지를 기억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수봉의 음악은 '트로트'로 분류되기보다 '심수봉의 음악'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노래로 기억되는 순간, 장르가 가진 편견은 허물어질 것이다. 그제서야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대가 형성이되고, 누구나 언제든지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멍하니 누워 심수봉의 음악을 듣고 있자니 어머니께서 방에 올라오셨다. 심수봉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며 오랜만에 어머니와 음악이야기를 나눴다. 심수봉의 오랜 팬인 어머니께선 대학가요제 영상을 보더니 그때 심수봉은 참 촌스러웠다고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래도 정말 좋았다고 이야기 해 주셨다. 나는 다시 영상을 보면서, 심수봉은 참 매력적인 뮤지션이라고 생각했다. 촌스럽다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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