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대로라면 어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읽는 모임에 갔었어야 했다. 매주 토요일은 신촌에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제는 광주에 내려갔다왔다. 그리고 지금은 모임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후기를 쓰고자 한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1월, 사람들과 철학 스터디 그룹을 만들고 싶어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혼자 이정우 선생님의 철학 개념서를 읽다가, 문득 사람들과 같이 철학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애초에 깊은 뜻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혼자서 공부하면 지루할지도 모를, 혼자서 읽게되면 미루고 미뤄 결국에는 읽지 못할 철학책을, 같이 읽으면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세명, 모여서 공부하면 잘 되는거겠지 하는 마음에 올린 트윗에, 수십명이 반응을 보였다. 즉각 리스트를 정리했고, 시간과 장소에서 결격사항이 없는 사람들 15명을 모았다.
바람이 매섭게 불고 기온은 몇년만에 최저를 기록한 한 겨울날,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약속된 장소로 모였다. 5명정도가 결석을 했지만, 이정도면 성공이다 싶었다. 처음엔 불안불안했지만 곧 체계가 잡혀나갔고 이대로만 한다면 괜찮은 모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달을 진행했을땐, 철학 개념서 2권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책거리와 봄맞이를 핑계로 사람들과 경기도 한 야영장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후에는 플라톤을 시작으로 하여 철학 원전들을 접해볼 예정이었다. 플라톤의 국가로 논문을 쓰는 대학원 선배를 섭외하여 강의를 열었다. 사람들은 좋은 반응을 보였고, 그때까지는 모임이 오래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원전읽기 모임을 진행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철학공부를 하면서부터 사람들의 참여가 시들해졌다. 어렵게 에우티프론과 향연을 읽었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선정하여 모임을 진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모임은 지지부진했다. 토론이 겉돌기 시작하고 모임이 활력을 잃으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연락을 끊었다. 누구하나 손 써볼 수 없을만큼 자연스러운 해체였다. 


모임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누구의 책임이라고도 할 수 없다. 애초에 사람들의 자유로운 참여에 기반한 모임이었으니까. 막상 모임을 하지 않는 토요일이 찾아오니, 덤덤했다. 아쉬움이 남는건 사실이었으나 모임 때문에 지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두가지 정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첫번째는 철학에 대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철학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을 하나의 무리로 생각하여 판단하기는 무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을 공유했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을 '도구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철학에 대한 막연한 배경지식과 그것의 '유용성'을 생각하고 모임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랬기에 스터디에서 진행된 모든 내용은 하나의 정리된 개념으로 정리돼야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개념을 즉각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이정우 선생님의 '개념-뿌리들'이라는 책으로 진행된 2달간의 스터디는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개념사'를 정리한 철학 개념서를 요약·정리하는 스터디는 누구에게나 유용했기 때문이다. 애초의 '철학 원전을 읽기 위한 개념정리'라는 목적을 넘어서 정말 '쓸만한'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었다.
문제는 원전을 읽어나가는 과정이었다. 새 교재를 선정하기에 앞서 현대철학을 공부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벤야민이나 아도르노, 비트겐슈타인등의 저서를 읽어보자는 것이었다. 혹은 그들의 사상을 정리한 2차문헌(중고등학생들을 위한 논술 학습서 등)을 읽자는 의견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 불가능한 제안이라 생각했다.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었다. 후자의 경우 그럴까도 싶었지만, 2차 문헌을 읽는 작업보다는 고전이라도 원전부터 읽어나가는게 의미가 있을것 같아 플라톤의 저서부터 읽어나가는 커리큘럼을 제시했다. 몇몇 반대의견이 있었으나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여 '향연'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흥미는 오래가지 않았다. 뭔가 쓸만한 것을 찾았던 사람들에게 향연은 어쩌면 그들이 생각하는 철학과는 거리가 만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모임을 만든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철학 원전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게 가장 큰 이유였다. 어려운 개념들은 매주 발표를 맡은 사람들이 먼저 공부를 해서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딱히 책을 읽고 뚜렷한 지식을 얻는다거나, 정답을 찾는 다는 것은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 몇몇 사람들은 동의를 했으나 몇몇은 그렇지 못하였다. 철학을 '도구적'으로 봤다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명확한 지식을 얻어가고자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의견 차이 때문에 모임이 스스로 해체됐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철학에 대해 서로가 가진 막연한 생각과 기대가 미묘하게 어긋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의견차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이다.

두번째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애초에 사람들을 모을 때 걱정했던 것은 철학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사람들이 모이는 그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초등학교때부터 인터넷 모임을 나갔었기에, 그 어떤 모임도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다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하더라도, 사람들간의 호/오는 쉽게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모임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가 언제나 유쾌하지 않다는 것이다. 소설의 전개와 같이, 모임의 절정에 이를 때 까지는 누구도 모임안의 갈등이 생기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설령 갈등이 생긴다 하더라도 분위기로 인해, 정으로 인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구성원들 사이에서 마찰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마찰 때문에 모임에 나가지 않게되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다같이 만나는 자리에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트위터 철학 모임은 말그대로 불특정 다수가 만난 모임이었다. 나이는 물론이며 직업이나 전공 그 어떤 것 하나 쉽사리 겹치지 않는 15명이 만났다. 소소한 의견차이부터 시작해 모임의 이상향에 대한 마찰까지. 사람들은 충분히 서로를 이해하고 공통분모를 찾을만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다들 너무 바빴다. 각자가 정해진 삶의 패턴에서 모임을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장은 나도 그랬고, 함깨한 내 친구들도 그랬다. 나는 사람들이 모이는것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 모임에서나 일어나는 미묘한 갈등이 나는 불편했다. 그리고 각자의 바쁜 삶에서 '철학공부'가 최우선이 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을 진척시키려고 하는 과정에서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모임을 떠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붙잡지 못하고, 나 스스로도 모임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모임이 아쉽고 모임때문에 지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철학 모임을 하자는 트윗에, 10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신기하고 기뻤다. 모임을 하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는 몇몇 사람들을 보면서 자극도 받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경험이었다. 사람들과 스터디를 하면서 느꼈던 것들, 봉착했던 문제점들은 나에겐 소중한 경험이다. 나중에 내가 카페를 만들고자 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인문학을 함께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미학을 비롯한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고, 강연을 열고 사람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싶다. 강사를 구하는 것 부터 사람들을 모으는 과정까지. 철학 모임을 통해서 얻은 경험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미래에 대한 설계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사람을 얻었다. 짧다면 짧은 6개월의 시간동안 거의 매주 스터디를 하면서 만났기 때문이다. 철학 스터디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던 수 많은 인연들은, 나에게 만남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짧게나마 글로 정리하고나니 조금은 후련하다. 고민하다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곳에 이렇게 글을 올렸다. 혹시나 트윗필로 사람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우선 함깨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맥주 한 잔 하면서, 지난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전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다시 모여, 즐거운 술자리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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