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루트는 레바논의 수도이자 뮤지션의 이름이다.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나는 베이루트의 음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베이루트는, 그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무언가가 있는 도시 이름이다. 그 뭔지모를 설렘과 미묘한 두근거림, 이국적인 느낌을 설명하기 위해선 영화 '카모메 식당'이 필요하다. 

카모메 식당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주말이 되면 종종 시네큐브나 압구정 스폰지 하우스를 찾아가, 조조 영화를 보곤했다. 일요일 아침, 그 곳의 조조영화 너무나 조용했다. 사람이 한 두 명, 어쩌다 운이 좋으면 나 혼자. 무얼 볼지도, 무얼 할지도 정하지 않은 채, 점심값과 영화비만 챙겨서 나오곤 했었다. 카모메 식당도 비슷했다. 여느 때처럼 나는 대충 아침밥을 챙겨먹고 조조영화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리곤 압구정 스폰지 하우스에 도착해 가장 먼저 상영하는 영화의 티켓을 끊었다.
카모메 식당은 지금도 영화의 장면장면이 생각날 정도로 인상깊을 정도로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맛있는 시나몬 롤이 나오는 장면이나 기름에 돈카츠가 튀겨지는 장면, 맛있게 데코레이션이 된 데리야키와 밥이 서빙되는 장면, 오니기리를 함께 먹는 장면 정도일 것이다. 먹을 것에 대한 묘사가 심상치 않았기에, 아침을 대충(혹은 거른) 먹고 나온 나에겐 곤욕이었다. 보통은 맛집을 찾아서 점심을 먹었지만, 그 날 만큼은 영화관에서 나오자마자 근처 음식점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카모메식당에서 음식을 담당한 사람이 따로 있다더라! -도시락과 관련된 서적도 냈고, 우리나라에 번역까지 됐다.) 
 


카모메 식당이 나에게 남긴 것은, 엄청난 식욕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꿈꾸는 많은 것을 실현 가능케 했다. 다음에 나오는 항목들은 내가 카모메 식당을 통해 실현한, 실현할 소박한 꿈이다.

  • 눈을 감고 지도의 아무 곳이나 찍어, 그 곳을 여행하기 - 내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와, 졸업여행을 했을 때의 일이다. 사회과 부도의 한국 지도면을 펴 놓고, 눈을 감은 채 여행지를 골랐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미도리가 손가락으로 찍어 핀란드를 찾은 것 처럼, 나도 눈을 감고 안동을 찍었고, 그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 커피를 내릴 때, '맛있게 내려지길!' 하고 마음 속으로 외치기 - 영화에서 사치에에게 커피를 가르쳐줬던 남자는, '코피 루왁'이라는 주문을 외치면 커피가 맛있어진다고 말한다. 사치에도, 나도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나의 카페에 오는 첫 손님은 평생 커피 무료! - 토미는 카모메 식당의 첫 손님이다. 사치에는 그에게 언제나 맛있게 내린 드립커피를 제공한다. 나도, 사치에처럼, 나의 카페를 찾는 첫 번째 손님에게 평생동안 커피를 무료로 내려줄 것이다.

사실, 항목으로 정리되지 못하는 것이 더 많다. 영화는 깨알같은 대사들로 가득하다. 사람과 음식 그리고 커피에 대해. 그리고 그 느낌이 바로 베이루트의 느낌이다. 눈을 감고 지도의 아무 곳이나 콕 찍은, 이국적이고 무언가가 있을 법한.

카페 베이루트

장사를 시작한 건, 2년 전의 일이다. 홍대와 서울대 캠퍼스에서의 커피 노점부터 시작해, 도장을 파고 원두를 판매하는 일까지 하게 됐다. 혼자 로스팅을 하다보면, 볶은 원두가 지나치게 많아져 다 먹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로스팅을 규칙적으로 하기 위해, 더 좋은 커피 맛을 찾기 위해 원두 장사를 결심했다. 생두값과 포장비에 약간의 인건비 정도를 고려하여 3천원에 판매를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이차저차 사정을 설명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갓 볶은 신선한 원두라는 컨셉으로, 맛 없으면 언제든지 새로 볶아준다는 서비스 정신으로 조금씩 사업(?)을 확장해왔다. 그리고 얼마 전, 친구가 만들어준 명함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원두 장사에 나서기 시작했다.


원두를 팔 때면, 항상 손님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미안하다는 건, 3-4천원만 더 하면 훌륭한 로스터리 샵에서 좋은 원두를 살 수 있음에도 보잘것 없는 나의 원두를 사 주기 때문이다. 고맙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나의 커피를 사 주고, 언제나 맛있게 먹었다고 웃어주기 때문이다. 언제나 수고한다며 판매 가격보다 웃돈을 얹어서 입금해주시는 손님, 남는 게 없어서 어떡하냐며 그래도 많이 팔아주면 좋겠지 하며 정기적으로 사 주시는 손님, 다른 샵에서 사먹는 것 보다 더 맛있으니, 힘내서 더 맛있게 볶아달라고 응원해주시는 손님, 조금씩 포장해서 남겠냐고 이왕 볶는거 잔뜩 볶아서 보내라고, 주변에 나주어주면 된다고 1키로도 넘게 주문해주시는 손님. 그 손님들 덕분에 나는 영화 속 카모메 식당의 주인이라도 된 양 기분이 좋아진다.

여름에는 콩을 볶기가 훨씬 힘들어진다. 좁은 베란다에서, 휴대용 버너를 켜 두고 1시간씩 로스팅을 하다보면, 어느새 땀 범벅이가 되곤 한다. 포장 비용에, 배송비용 그리고 작게는 버너에 쓰이는 가스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결코 남는 장사는 아니다. 시험기간이면 몰려드는 주문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언제나 로스팅을 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즐거울 것이다.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는 한 번도 반복되는 식당일을 지루해 한 적이 없다. 손님이 오지 않는 가게에서 하염없이 컵과 테이블을 닦으면서도 웃음을 잃은 적이 없다. 그리고 언제나 손님이 오면 최선을 다해 맞이한다. 이내 헬싱키의 그 가게는, 손님들로 가득 찬다. 그리고 손님들의 손에는 그곳의 대표메뉴인 오니기리를 들고 있다.

나도 비슷한 심정이다. 언제나 손님이 찾아와주길 바라며 콩을 볶고 있다. 내가 바라는 건, 이윤이 아니다. 내 커피는 이윤을 내서 팔 만큼 훌륭한 커피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언제나 내가 계속 로스팅을 할 수 있게 끊임없이 카페 베이루트를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다는 게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항상 손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제일 처음, 학교 캠퍼스에서 노점을 했을 때의 일이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노점 주위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따사로운 햇살속에 커피를 내리면서, 나는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그 때 내렸던 커피가,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기억속에 남아있다. 그 때도 나는 카모메 식당의 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언젠가, 정말로 '카페'를 여는 그 날이 와도, 이 마음을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언제나 '카모메 식당'의 주인이 된 기분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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