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잠이 안오는 밤이다. 커피 다섯 잔을 마시고도 누운지 5분만에 잠에 빠져드는 나에게, 이런 날은 굉장히 드문 날이다. 너무 피곤하다는 느낌에 자리에 누웠지만, 이내 눈은 말똥말똥 거렸고, 내리는 빗소리에 마음만 심란해져 일어나고 말았다. 에잇 억울하다.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푹 자려고 했더니만, 생각하며 냉장고에서 오렌지를 하나 꺼내왔다.

창문을 열었다. 닫아놓은 창문 사이로는 빗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디장 앞으로 갔다. 오랜만에 찾아온 새벽 음악 감상 시간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곤, 망설이지 않고 Jeff Buckley를 꺼내 들었다. 쇼팽을 들을까하고 잠시 망설였지만, 얼마 전, 비온다는 핑계로 곰다방에 쇼팽 시디를 들고가 틀어달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서 제프 버클리를 골랐다. 제프 버클리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었다.


싱글 음반을 제외하고, 전집을 다 모은 아티스트가 딱 둘이 있다. Elliott Smith와 Jeff Buckley. 엘리엇 스미스는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라 음반은 물론 미공개 라이브 엠피 파일까지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제프 버클리는 그 정도로 좋아한다거나, 자주 듣는 편은 아니다. 내가 제프 버클리의 음반을 다 모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의 짧은 생애 덕분이다. 허무하게도, 천재 아티스트라 불렸던 제프버클리는 단 한장의 앨범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친구들과 물놀이를 떠났다가 계곡물에 그만 익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Grace'는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어느 곡, 멜로디, 가사까지도 하나 버릴것 없는 훌륭한 음반이다. 특히나 제프 버클리만의 울림있는 목소리는 - 특히 Hallelujah에서 정점을 찍는다-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게 할 만큼이나 강렬하다(비오는 날에는 특히나 더!). 그랬기에, 모두가 제프 버클리에게 엄청난 기대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훌륭한 두 번째 앨범을 들려주지도, 소포모어 징크스가 가득찬 앨범을 선물해주지도 못했다. 그랬기에, Grace는 더욱더 강렬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됐을 것이다. 너무나도 짧고 강렬했던 그의 첫 앨범은, 그 어떤 소설보다도 더 깊은 감동을 남기는 한 편의 시이기 때문이다.

잔인한 말이지만, 음악가는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음악을 살리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 커트 코베인이나 엘리엇 스미스나, 그들의 죽음이 없었다면 그들의 음악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제프 버클리도 두 번째 앨범이 있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느낌은 들이 않았을 것이다-실제로 그가 녹음을 하다 만 두 번 째 앨범은, 그의 죽음 이후에 하나의 앨범으로 발매되었지만,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혹은,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어서 그의 공연을 볼 수 있었더라면, 그의 앨범을 듣는 의미가 덜했을 것이다.


라디오를 진행하던 어느날, 게스트로 왔던 한 분이 제프 버클리의 음악을 신청했었다(신청곡은 Lover, You Should Come Over였던 것 같다). 그 한 곡의 신청 덕분에, 그 분에 대한 느낌을 오랬동안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신청곡 덕분에 그 분이 연주했던 음악들이 더 인상깊게 남았던 것 같다. 제프 버클리를 사랑하고 그의 음악을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그 사람과 강한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엘리엇 스미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클럽에서, 제프 버클리에 관한 짧은 글을 본적이 있었다. 사실은, 그 글 때문에 제프버클리의 라이브 앨범을 구입했었다. 그리곤 그 글을 다시 읽으며 앨범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생각나서 찾아보니, 다행이도 게시글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출처와 글쓴이를 밝히고 이곳에 그 글을 옮겨본다.

내가 그를 본 것은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이제 막
불어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뉴욕의 한적한 골목길을
너덜너덜한 반팔 셔츠와 얇은 가디건만을 걸친 채
걷다가 마음이 내키면 오른쪽 어깨에 삐뚤게 걸어둔
카메라의 렌즈캡을 열고 갈색의 벽돌에 걸쳐있는
빛의 움직임을 잠깐씩 포착하는 것이 그저그런 일상인
그런 하루였다. 그렇게 나는 모르는 골목을 거쳐서
이름만 들어본 큰 길까지 나오는 하루를 반복하였다.

 

그러다 어느 커피 하우스에 들어갔다. 딱 봐도 시대의
루저들이나 할 일 없는 아저씨들이 모여서 종업원에게
말도 안되는 농담이나 늘어놓으며 커피를 홀짝이게
생긴 그 곳은 짤랑이는 문을 열자마자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그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역시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있는 아저씨들은 키만 자기네
같은 동양 청년을 동물원에서 식사 중인 악어를 보듯
인상을 찌푸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메이드 복장은 커녕
후줄근한 원피스를 입은 아줌마가 내게 와서는 주문을
받고 나는 그저 커피에 베이글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깊은 한 숨을 쉬며 카메라를 만지작 거렸다. 바지
뒷춤에서 낡은 수첩을 꺼내어 그저 뒤적거리기만 했다.

 

 

그 때,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점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기네스 맥주
한 병을 받아 들고는 커피하우스 구석에 마련된 스테이지로
들어갔다. 사실 스테이지래봤자, 그저 앰프만 딸랑 두 개
있는 그곳에서 그는 가방을 열고 기타를 꺼내어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이크 전원을 켜고 인사도 없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늘상 있는 일처럼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하지만 나는 멍하니 그런 그를 보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사진기를 꺼내었다. 커피는 이미 식어
있었고, 베이글은 여전히 딱딱했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가만히 셔터를 열고, 닫았다.

 

그제서야 그가 인사를 한다. "thank you." 그 한마디를
남기고 그는 주섬주섬 기타를 챙겨 들어오던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짤랑거리는 문을 열고 나간다. 나는 그제서야 멍하니
찬 커피를 입술에 대었다. 묘하게 그 쓴 커피의 맛이 그 날의
경험과 딱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듬거리며 점원에게 그의 이름을 물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말한다.


"jeff buckley."

 


 

 

copyright 2006 suffering mind

all rights reserved JEFFUCKLEY
 
- 싸이월드 클럽 drink up, baby, 김용현님의 글




창 밖으로 빗소리가 조곤조곤 들려온다. 미묘하게 제프버클리의 음악과 어울린다. 가슴으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기타 소리에, 나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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