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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0 01:28
- 여행기 중간에 써 넣을 예정이었으나, 할 얘기가 길어져 따로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탄자니아 아루샤 여행중에 기록해두었던 이야기이며 오늘 내가 카페에서 겪었던 일 덕분에 한 편의 글이 되었다.

카페에 앉아 조용히 라오스 여행에 대한 책을 읽고 있었다. 카페 주인과 친분이 있던 나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주고 받았다. 그리고 손님들과 이야기 하길 좋아하는 주인 덕분에 나는 얼마전 라오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온 한 손님을 만날 수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라오스에 대해 짧지만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이어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곤 그다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곧 카페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옆 자리에 앉아있었고 라오스에 대한 이야기었기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았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그 사람은 선교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라오스에 다녀온것도 선교 때문인 것 같았다. 이야기는 흘러흘러 라오스에 지어질 선교학교까지 이어졌다. 거기서, 나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1년 전, 탄자니아를 여행할 때 들렀던 YMCA 숙소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응고로 응고로에서 만난 마사이족 아이



우리가 여행 중 머물렀던 숙소는 대부분 아프리카 친구의 친구들 집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저렴한 가격으로(우리는 숙박비 대신에 생필품을 잔뜩 사들고 가곤 했다.) 잠잘 곳을 해결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루샤에서는 잠 잘 곳을 구하지 못하였고 동행했던 친구의 소개로  그곳의 한국 YMCA숙소에 머무를 수 있게되었다. 게스트하우스나 호텔만큼 훌륭한 숙소는 아니었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침실과 아침 저녁이 제공되는 곳이었다.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곳에서 하루 묵어갈 수 있었디.

다음 날 아침 일찍 응고로응고로(아루샤 근처에 형성된 분화구 지역으로 사파리를 할 수 있는 곳, 마사이족 말로 '분화구'라는 뜻)로 이동하기로 하고, 그 날은 숙소 주변과 아루샤 시내를 구경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정은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들인 YMCA숙소의 선교사님들께서 손수 도와주셨다. 덕분에 우리는 점심으로 오랜만에 얼큰한 육개장을 먹을 수 있었고, 흔쾌히 가이드를 해주신 덕분에 아루샤 시내도 구경할 수 있었다. 참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시간이 마냥 고맙고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곳에 한창 지어지고 있던, 선교사님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선교학교였다. 선교사들은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그 학교를 구경시켜주셨다. 학교는 대단했다. 교실의 기자재부터 화장실의 설비 하나하나까지, 모두 한국에서 공수해서 인테리어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 장비까지도 최고급으로 준비해 다가올 새 학기에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학교 시설은 물론이요, 모든 면에서 아루샤 전체를 아우러 최고의 학교였다. 도서관도 엄청난 양의 책이 준비되어있었고, 길도 잘 닦여있었다. 새 학기에는 아루샤 주변에서 임의로 선택된 학생들이 학교에 들어올 것이며,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생활을 할 것이라 말씀해주셨다. 선교사님은, 이 학교를 통해 수 많은 탄자니아 어린이들이 참된 기독교인으로 태어날 것이라 이야기 하며 뿌듯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최근에 아루샤 지역에서 많은 무슬림 지역을 기독교화 시키는데 성공했다며, 곧 이 주변의 대부분이 기독교를 믿에 될 것이라 말씀해주셨다.

내가 불편했던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선교사님은, 왜 탄자니아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따로 해 주시지 않았다. 그 분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는 일은 숙명이자, 자신의 특명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교사분들은 아루샤 사람들의 문화적, 종교적 다양성에 대해 어떠한 배려도 없었다. 우선, 학교부터가 마음에 걸렸다. 학교는 입학연령에 맞는 학생들을 무작위로 입학시킨다고 하였다. 그렇게 입학한 학생들은 어떠한 종교적 선택의 여지 없이 기독교 교육을 받아야 한다.(선교사님께 들은 바에 의하면 교육에서 기독교에 대한 수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았다) 그들이 이 학교에 입학한 이상 다른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뚜렷한 신념으로 다른 종교를 택할 수도 있겠으나, 모든 수업에서 기독교 사상을 가르치고, 수 많은 책이 소장되어있는 도서관에는 기독교 관련 서적 뿐이니 학생들은 다른 생각을 할 여유 없이 기독교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학교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기독교의 포교 또한 종교적 배려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도 나를 불편하게 만든 요소였다. 그 지역 선교활동는 대략 우물이나 마을 개발을 도와준 후 그 옆에 십자가가 달린 교회를 만들고 사람들을 그곳으로 이끄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슬람 교도들이 있는 지역이나 다른 믿음이 있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포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선교사님은 이슬람 교도를 몰아내고 기독교가 자리잡고 있는 모습에 뿌듯해 하셨다. 겉으로 보면 선량하기 그지 없는 봉사활동이지만, 알고보면 그 일은 마을 개발이나 우물 파기를 댓가로 그들에게 기독교인이 되는 약속을 받아내는 폭력적인 일이었다.
 
물론, 그들이 고국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먼 아프리카 땅 까지 날아가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며 봉사활동을 하는 일에 트집을 잡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선교를 하는 방식은 분명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에는 다양한 민족이 살아가고 있고 그들은 그들 나름의 종교가 있고 문화가 있다. 하지만 선교 학교는 그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무시하고 기독교만을 선택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리고 선교 활동은 하느님의 사랑처럼 포용적으로, 평온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봉사활동과 함께 종교도 강요했다.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오직 기독교 뿐이었으며, 다른 문화적 배경은 고려할 만한 요소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함께 사는 것 보다, 모두가 같은 믿음을 가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어렸을 적, 교회를 다녔을 때에도 나의 생각은 같았다. 선교는 기독교의 포교가 우선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선교의 목표는 하느님의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사랑을 느낀 사람이 스스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 선교를 통해 타 종교를 몰아내고, 포교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은채 무조건 적인 개종과 믿음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우물과 봉사를 파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의 진정한 사랑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자신의 믿음을 믿는다면, 타인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그들의 자신의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는 신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탄자니아에서 만났던 선교사들에게 그러한 마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케냐에서 만났던 외교관 만큼이나 그들은 타인에 대한 문화적, 종교적 이해가 협소했다. 

아루샤에서는 아프리카 친구인 준이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았다. 아루샤에서 준이와의 주된 대화 소재는 한국 기도교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나에게 식사시간에 기도를 하라고 강요했던 모습을 보면서, 마구잡이로 기독교 세력을 늘려가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가 실망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생각을 나눴다.

아루샤를 떠나기 전, 우리는 근처에 머물고 있는 다른 선교사의 집에서 머무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곳은 젊은 선교사 부부의 집이었다. 그 부부는 흔쾌히 우리를 집에 초대해 맛있는 한국음식을 대접해주셨다. 우리는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고, 밤 늦게 까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이야기 하던 도중, 선교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게 되었다. 약간은 보수적이셨던 숙소의 선교사분들과는 달리 젊은 선교사 부부는 나의 이야기를 흔쾌히 들어주셨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심으로 공감을 해주셨다. 그렇게 서로 깊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웃으면서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다. 아루샤를 떠나는 버스 안에서 나는 우물과 봉사활동을 파는 행위와 사랑을 나누는 일에 대하여 생각을 했다. 그리곤 더 이상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우물과 봉사활동을 댓가로 믿음을 강요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가는 선교사들의 땀방울이 헛되이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했다.


나는 카페에 앉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라오스에 만든다는 선교 학교가 탄자니아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길 바랐다. 기독교인의 힘으로 지어졌지만, 다양한 믿음과 문화가 공존하고 어우러지는 학교가 되길 바랐다. 그리고 카페를 나오며 오늘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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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 2015.09.08 02:57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루샤 검색으로 들어왔다 크게 공감하여 몇자 적습니다.. 상대적 약자들에게 특정 목적을 가지고 다가가는 것은 전혀 순수한 목적으로 보여지질 않네요.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그들의 선교 활동은 진정 누구를 위해서인지, 그들 스스로가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은령써니 | 2016.06.13 03:15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라오스 선교로 검색중 들렀습니다 여러 생각을 하게 하네요
글만으로 깊게 알 순 없었지만, 우물과 봉사를 '제공'하고 마치 댓가처럼 기독교 신앙을 강요하는 것 같다는 말씀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분명 먼 탄자니아에서 타인을 돕는 건 존경스럽지만, 뒤에 나오는 젊은 부부 선교사들과 앞의 단체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입니다
소중한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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