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에 트위터에 클로쏘 형님이 글을 올리셨다. 개인적으로 Blur, Oasis보단 Pulp, Suede라고. 나도 찬성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생각 난 김에 집에 있는 먼지쌓인 그 앨범들을 찾아 들었다. 한동안 잊고 지낸 사실이지만, 정말 90년대 말에는 소장가지 100%을 넘나드는 앨범이 많았던 것 같다.

2. 역시 다시 들어봐도 펄프는 우월했다. 앨범의 컨셉이나 멜로디, 곡들간의 조화. 어떤걸 생각해봐도 역시나 펄프였다. John Peel이 유명세를 떨칠 수 있었던 것은 Pulp같은 인재들을 데뷔시킨 일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좋은 목소리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좋은 귀를 가지고 좋은 음악을 찾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훌륭한 목소리를 발견하는 것도 훌륭한 음악만큼이나 소중한 일이니까.

3. 2학년 1학기 때, 영미 문화읽기라는 수업을 들었다. 수강생 대부분이 외국에서 오래 살다왔거나 아예 외국 고등학교 출신 학생들이었다. 매 수업마다 100개 이상의 아주 생소한 영단어 블랭크 시험이 있었고, 은근히 경쟁이 있는 발표까지 있는, 교양치곤 매우 고난이도 수업이었다. 신기한건, 나와 몇몇을 제외한 사람들은 이 수업을 무난하게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 드디어 나에게도 발표할 때가 찾아왔다. 그 때, 난 pulp의 common people를, 볼륨을 높여, 강의실 전체에 그들의 음악이 울려퍼지도록 틀었다.

 

4. 발표 내용은, 영미 문화읽기에서 배운 영국 사람들의 미묘한 계급의식에 관한 것이었다. 영국 사람들은 알게모르게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은근히 표면에 드러난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나는 당시 펄프의 음악에 심취해있었고, 그들이 영국 밴드라는 점, Different Class라는 앨범에 Common People라는 평범하지 않은 음악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이 노래의 가사를 대충 찾아보았다. 몇가지 펄프의 사진과 유투브 동영상을 근거로 나는 이 노래는 펄프가 계급의식에 대한 미묘한 풍자를 담은곡이다! 라고 자의적(?)으로 결론을 내렸고 꾸역꾸역 발표준비를 하였다.

5. 나의 생각은, 노래를 듣고 사람들이 충격에 빠지거나, 펄프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보는 것이 다음 순서였다. 그리고! 발표가 끝나자 어떤 사람이 손을 드는 것이었다! 토론이 전무한 이 수업에서 누군가 나와 토론을 하고 손을 들다니! 내 발표가, 펄프가, 커몬피플이 그렇게고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가!!!!! 라고 생각을 했었다.

6. 그 학생은 손을 들고 내가 "네, 말씀하시죠"라고 말하자 큰소리로 당당하게 나에게 말했다.
 
"저기요, 발표는 좋은데요, 너무 길게 하신거 아닌가요, 그다음이 제 차례인데, 다음사람도 생각해주셔야죠"

커다랗고 두껍게 안경을 쓴 학생이 뒷자리에서 손을들고 얘기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즉시 유투브 창을 닫고, 자리에 돌아왔다. 그리곤 생각했다. 아! 역시 대중을 사로잡으려면 Oasis를 선택했어야 했던것인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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