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386세대! 지갑 열고 입 닫아”

[130호] 2010년 03월 16일 (화) 16:39:13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20대가 제일 듣기 싫은 말 가운데 하나가 ‘88만원 세대’란다.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면서 붙기 시작한 ‘G세대’니 ‘88둥이’도 정작 20대는 시큰둥한 표정이다. 386세대가 익숙했던 잣대로 88만원 세대니, G세대니, N세대니 따위로 자신들을 규정짓는다며 20대는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규정 당하기를 거부한 20대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려대 김예슬씨 자퇴 선언에 이어 20대 노조인 청년유니온이 결성됐고, ‘마포는 대학’ 이나 ‘율면은 대학’ 등 돈에 구애 받지 않는 행복 직업 찾기도 시작됐다. 

도대체 20대 넌 누구냐? 20대 기자가 20대 다양한 삶 속으로 뛰어들었다.

주말 저녁 6시. 주파수 100.7MHz에 맞추면 20대 DJ 다섯 명의 ‘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프로그램 이름은 무시무시하게도 ‘이빨을 드러낸 20대(이드2).’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DJ 평균 나이는 23.2세, “지금 20대에게 필요한 건 ‘깡’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프로그램 이름도 이렇게 지어봤단다. 지난해 11월21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이제 4개월 차에 접어든 이드2는 ‘20대에, 20대를 위한, 20대의 방송’을 표방한다.

이드2를 만든 건 시원한 맥주 한 잔 때문이었다. 지난해 10월 어느 날, 서울 마포구 지역공동체 라디오 마포FM 자원 활동가를 하던 너구리(방송 애칭·본명 조소나·25), 양큐(김양우·22), 늘보(김지애·24)는 맥주잔을 기울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취업 얘기에 한 숨 한 번, 군대 얘기에 또 한숨을 내쉬었다. 

   
마포FM에서 '이빨을 드러낸 20대(이드2)'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20대 DJ
누군가 우석훈의 책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얘기를 꺼냈고, 자리는 갑자기 “레알(진짜) 뭔가 한 번 해봐!”라며 들떴다. 셋은 “우리끼리 우리를 위한, 우리의 답답함을 담아 낼 수 있는 방송을 해보면 어떨까?”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친구인 돼지(유기림·23), 쩌리쪼(조원진·21)까지 불러들여 다섯 명으로 제작팀을 꾸렸고, 공동체 라디오 마포FM에 프로그램을 제안해 방송 허락을 받았다.

이드2는 20대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20대를 위한 ‘우정과 환대’의 공간으로, 또 다양한 20대 활동가들에게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되도록 많은 20대를 스튜디오로 불러들인다. 20대 저널리스트의 모임 ‘고함20’, 영화 <개청춘>을 제작한 영상집단 ‘반이다’ 등 20대 활동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20대들을 직접 스튜디오로 불렀다. 

지난 3월13일 방송에서는 고려대 김예슬씨가 붙인 자퇴 대자보를 놓고 DJ 5명이 “우리에게 대학은 뭘까”를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철학과를 간다고 울던 엄마 생각에 눈시울 붉히던 조원진씨, “대학생이 아닌 동생을 남들이 뭐하냐고 물으면 ‘학생’이라고 대답한다”라며 눈물 한 방울 보태던 김지애씨 등 모두 답도 없고 무기력해 하던 중 유기림씨가 “자퇴하지 않은, 할 수 없는 우리는 뭘 할거냐, 그래서 우리는 ‘이드2’를 하지요”라고 말했다. 일동 웃음이 터졌다.

패기만만하게 시작한 이드2가 정말 20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지 물어보자, 김지애씨는 “20대가 얼마나 다양한가. 많은 20대가 있는데 누구에 초점을 맞춰야 하나. 우리도 대학생이라는 한계가 있고, 만나기 어려운 20대가 있다. 그래서 못하는 얘기가 있다는 게 우리의 한계다”라고 말했다. 

   
일주일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와 곧 다가올 졸업, 군 입대는 20대들에게‘뚫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이들에게 라디오 방송이 20대를 억압하는 세상에 ‘하이킥’을 날릴 수 있는 활력소라면, 일주일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와 곧 다가올 졸업, 군 입대는 ‘뚫을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도 이들은 과외, 번역 등 닥치는 대로 ‘알바’를 뛰면서도 세상에 이빨을 드러내고 이가는 소리를 계속 내고 싶어 했다. 

20대 세대론에 대해서도 묻자, 이드2는 ‘88만원 세대’라는 20대에게 부여된 필연적인 이름마저 마뜩찮게 생각하고 있었다. ‘G세대’니, ‘V세대’니 언론이 조명하는 20대의 모습도, 이들에겐 어른들이 ‘하명’한 이름일 뿐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조소나씨는 “20대에게 이름을 붙이려는 것 자체가 옛날 사고방식인 것 같다. 그냥 우리는 다양하고 산발적이다. 그 와중에 네트워크가 생기는 거다. 그런 네트워크들이 이를테면 EU(유럽연합)처럼 묶이는 방식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세대’이름으로 묶는 건 속한 개개인을 불행하게 하거나 소외시키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유기림씨 역시 “왜 이렇게 규정짓지 못해서 안달인지 모르겠다”라며 웃었다. 
김지애씨는 단칼에 20대론을 벴다. “386세대!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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