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만이다. 다섯명이 다 같이 만난 일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되었기에 이전처럼 2주에 한 번 다 같이 볼 일이 없었다. 만나는 일이야 가끔 한 두명이서 모여 술잔을 부딫치는 일 밖에 없었다. 그런 우리가 이렇게 다시 모이게 될 줄은 몰랐다. 모두가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약속된 시간에 맞춰 홍대로 와주었다. 오랜만이었지만, 우리는 예전처럼 스스럼없이 서로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와 양우를 제외하곤 다들 출판사를 와본 적이 없어 살짝은 분위기가 얼어있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지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곧 화기애애해졌다. 솔직한 얘기들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책의 주된 내용은 나와 양우가 적어나가겠지만, 과거에 우리가 가졌던 추억은 모두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쨋건 다섯명의 목소리가 모두 책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한 처사이다. 마무리 작업에서 부랴부랴 약속을 잡고 5명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좀 더 좋은 출판을 위한 모두의 노력때문일게다. 4시간 남짓 이뤄진 회의는 시간가는줄 모르게 진행되었고, 어느정도 책의 윤곽이 잡히고 작업의 마무리를 바라볼 수 있게되었다.

작년, 그러니까 2008년 3월 처음 출판 제의를 받았다.
우리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보면 어떠겠냐는 유성룡실장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애초에 우리 모임이 출발할 때부터 책을 만는 것이 소정의 목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여러모로 필요한 출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하고 멤버들 중 같이 작업이 가능한 양우와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출판계획서를 만들고, 출판사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다. 딱딱한 분위기에서가 아닌 편한 술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속마음을 진솔히 털어놓았다. '왜 우리가 책을 출판해야 하는가?' 혹은 '우리의 이야기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따위의 이야기가 오고갔다. 대화를 나누면서 양우와 내가 합의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입시 성공을 위한 메뉴얼'을 출판하겠다는 것이라면 우리는 정중히 거절하겠다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대학을 잘 가는 방법 정도라면 우리보다도 훨씬 더 좋은 입시결과를 가진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시중에는 그런 책들이 많이 있을 뿐더러, 우리도 별 그것들에 별 흥미가 없었다. 또한, 결론적으로 우리 모임이 입시에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다섯명 중 두명은 논술로 대학을 가지 않았다. 두 명은 더 높은 목표를 위해 다시 팬을 잡았고, 한 명은 논술로 대학을 갔지만 워낙에 글을 잘 쓰는 친구였다. 여러모로 우리는 입시와는 상관없는 모임이었다. 출판사의 입장도 우리와 차이가 없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하는 것은 '입시 성공기를 잘 만들어내 수익을 내 보려는' 목적과는 거리가 있었다. '꼭 필요한 책'이었기에 소수의 독자들만 책을 사게 되더라도 과감히 내 보겠다는 것이었다. 몇 번의 접촉이 오가고 본격적인 책 쓰기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책을 '논술을 잘 쓰기 위한 비법'을 찾아내거나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지름길'을 위해 읽고자 했다면 당장 이 순간부터 책을 덮어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우리가 풀어놓을 이야기들은 이 두가지 것들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내용들이다. 애초에 모임이 만들어졌을 때, 5명이 가진 마음은 모두 달랐다. 하지만 2년여간의 활동속에서 우리는 공통의 분모를 발견했다. 10대의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가장 열정적인 일 중 하나가 '독서'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며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은 입시라는 짧은 목표에 응한다기 보다는 인생에 있어 큰 방점하나를 찍는 작업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책을 읽게 되었는지, 아무런 강요 없이 스스로 토론을 하게 되고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앞으로 우리가 써 나갈 내용들이다. 더불어 이러한 활동 또는 행동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찾아볼 것이다. 고등학생들에게 책을 못들게 만드는 입시제도에 대한 비판이며,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메뉴얼을 만들어가며 토론을 했던 생생한 경험담이기도 하다. 팍팍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물','증여','연대'가 무엇인지에 대해 보여주는 글이기도 하다.

처음 우리가 모였을 때 모습이 서로 달랐고, 목표도 달랐다. 아마 이 책을 펼친 많은 독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공통 분보를 발견하며 모임의 의미를 찾았던 우리들의 모습처럼 이 책의 독자들도 하나의 소중한 메시지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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