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책읽고 이야기하니 스트레스 훌훌
생각 정리되고 남 설득할 논리력 키워져
독서토론 모임 ‘노란잠수함’ 회원들 만나보니
한겨레
» 조원진(서울 대성고 졸·왼쪽), 김양우(서울 대신고 졸·오른쪽).
“애초에 ‘노란 잠수함’(yellow submarine)은 비틀스의 앨범에서 따온 것입니다. 노란색은 회원들이 지적 재기발랄함을 뜻합니다. 학문의 탐구에 대해서 어떤 경계, 어떤 권위도 넘나드는 지적인 월경(越境), 이것이 우리의 정신입니다.”

인문학의 바다에서 ‘노란 잠수함’을 타고 대학에 간 이들이 있다. 이들은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일로 스트레스를 풀 때,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글을 썼다. 이른바 ‘인문학적 활동’이다. 김양우(서울 대신고 졸), 김준기(서울 충암고 졸), 이은호(서울 대성고 졸), 조원진(서울 대성고 졸), 홍종일(서울 대성고 졸), 89년생 동갑내기 다섯 명이 그 주인공이다. 노란 잠수함은 모임 이름이다. 이들은 인문학적 활동을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조원진씨는 우선 ‘재미’를 꼽는다. “일주일 내내 내신이나 수능 공부에 시달리다 일요일에 친구들을 만나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일주일 스트레스가 다 날아갈 정도였으니까요. 마치 노는 것 같았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같은 정신분석학 책을 읽으면서 사춘기 남학생들의 왕성한 성욕을 이해하는 것은 ‘야동’을 보는 것 못지않았다.

재미있는 토론이 되려면 조건이 있었다. 책을 이해해야 했고 각자 읽은 내용을 다른 친구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논리’가 필요했던 거다. 김양우씨는 “책을 혼자서 읽고 말면 내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며 “남들과 얘기하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할 논리를 만들 수도 있으므로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친구들과 함께한 토론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쓰는 훈련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갓 스무살이 된 이들이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어려움 없이 책을 쓰고 있는 것도 이때 얻은 글쓰기 내공 덕이다. 발표와 토론이 많은 대학 수업에 적응하는 것도 수월했다.

조원진씨는 독서토론을 통해 이기적인 성격을 많이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독서는 결국 타인이 타인에 대해 쓴 글을 읽는 것이므로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며 “토론을 통해 남의 의견을 듣고 인정하는 경험을 쌓은 것도 나 말고 다른 이를 인정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김양우씨는 독서토론의 덕을 톡톡히 봤다. 그는 논술 반영 비율이 큰 수시 모집을 통해 연세대 외국어문학부에 입학했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독서토론에 논술 학원 선생님들이 참여해 논술 첨삭을 받긴 했지만 친구들과 꾸준히 진행했던 독서토론이 힘이 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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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다양한 4~5명 규모 모임 적당”

김양우씨는 “논술에 관심이 있는데 학원에 다니는 것은 부담스럽고 스스로 뭔가 하고 싶다면 친구들과 독서토론 모임을 꾸리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아도 좋다. 고교 시절의 한 자락에 사색의 물을 들이고 싶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노란 잠수함의 노하우에 주목하라

우선 모임의 규모는 4~5명 정도가 좋다. 인원이 너무 적으면 발제 순서가 일찍 돌아와 금세 지칠 수 있다.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보다는 서로 다른 친구들이 모이면 훨씬 더 풍부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도 유념하라. 참고로 노란 잠수함의 다섯 명은 철학, 수학, 역사, 문학 등 각자의 관심사가 크게 달랐고 서로 지적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을 모았으면 규칙을 정한다. 규칙은 구성원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정하면 된다. 구성원에게 공평하게 책임과 의무가 부여돼 있어야 모임에 성실하게 참여할 수 있다. 단, 규칙을 고수하려고만 하면 안 된다. 모임이 끝날 때마다 그냥 모임 자체에 대한 반성과 검토를 통해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고교생 독서토론의 원조 격인 ‘노란 잠수함’은 비슷한 성격의 독서토론 모임을 만드는 고교생들에게 모임 운영 등에 대한 조언을 해 줄 계획이다. 선착순 다섯 팀이며 원하는 이들은 전자우편 (edu@hani.co.kr)으로 보내면 된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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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인터뷰 이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신 진명선 기자님. 덕분에 책이 나오기도전에 메스컴을 탔다.
열심히 쓰고있지만 힘든 요즘, 이런 일들은 막판스퍼트를 올리게 해준다.

날 인터뷰 한 기사중 제일 마음에 드는 기사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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